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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사람 (확대작)

오귀스트 로댕
1840-1917
생각하는 사람 (확대작)
1881-82(원형)、1902-03(확대)、1926(주조)
브론즈
마츠카타 컬렉션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로댕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단테가 문 앞의 바위에 앉아 시적인 몽상에 빠져 있다. 그의 등 뒤에 우골리노, 프란체스카, 파올로 등《신곡》의 모든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은 실현되지 않았다. 전체에서 잘라낸 야윈 몸의 고뇌하는 단테의 모습은 의미가 없었다. 나는 최초의 영감에 따라 사색하는 다른 인물을 생각했다. 나체의 남자가 바위에 앉아 두 다리를 끌어당기고 주먹을 이에 대고 몽상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색이 그의 머릿속에서 천천히 확실한 모습을 갖추어 간다. 그는 더이상 몽상가가 아니다. 그는 창조자다” <생각하는 사람> 의 육체 표현과 자세에서는 <아담> 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느껴진다. 구체적으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의 예언자 에레미아, 산 로렌초 성당 메디치가 묘지의 로렌초 데 메디치등이다. 그러나 더욱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작품은 카르포의 <우골리노> (1863년) 로 오른쪽 팔꿈치를 왼쪽 허벅다리에 얹은 자세는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이 카르포의 조각 역시 미켈란젤로의 영향 아래 로마에서 제작했다. 이 거대한 청동상은 로댕의 협력자였던 앙리 르보세가 로댕이 1881년에서 1882년에 걸쳐 만든 원형을 모델로 1902년에서 1903년에 걸쳐 확대 제작했다. <지옥의 문> 으로부터 독립한 <생각하는 사람> 은 하나의 사색하는 인물이 아닌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인간상이 되었다.

S.1959-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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