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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프랑스와 영국 미술이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그림들을 떠올리시나요? 프랑스의 사실주의나 인상파, 혹은 영국의 라파엘 전파나 유미주의 작가들의 작품이 떠오른 분도 적지 않을 테지요. 그러나 오늘날 에폭 메이커(새 시대를 연 획기적인 화가)로서 언급되는 예술운동과 화가들의 배후에는 항상 아카데미 화가들-미술계의 중추를 담당하는 아카데미에 소속하여 고전주의적인 예술 양식을 중시한 화가들-이 있었고, 그들이야말로 당시 화단의 주류를 이루며 미술의 규범을 체현하고 있었습니다.
1648년 프랑스에서 창립된 왕립 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는 르네상스 말기부터 17세기 초에 이탈리아에서 설립된 미술기관을 본떠 탄생했으며, 곧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교육의 전당으로 성장했습니다. 프랑스혁명에 의해 한 번 해체된 아카데미는 그 후 프랑스 학술원의 한 부문으로 다시 설치되었고, 교육 조직은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로 계승됩니다. 이를 본보기로 영국에서 탄생한 것이 1768년에 창립된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트(왕립예술원)이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운영 모체와 체제를 바꾸면서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카데미의 권위와 전통은 사회의 급속한 근대화로 인해 흔들리게 되고,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아카데미즘은 쇠퇴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역사화를 정점으로 하는 회화 장르의 히에라르키는 점차 쇠퇴하여 장르 간의 우열이나 경계는 모호해져 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카데미에서 입지를 굳힌 화가들은 시대의 변용이나 새로운 화파의 등장에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변화무쌍한 시대에서 수요에 따라 주제와 양식, 매체를 바꾸어 제작하면서 아카데미의 지주로서 그 전통과 역사를 후세에 계승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본 전람회에서는 양국의 아카데미 화가들의 업적과 제작 상황을 되짚어 보고, 다양화된 주제와 모티브, 모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유연하고 전략적인 자세와 그들이 이끌었던 ‘또 하나의 19세기’를 재조명합니다.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시냇가》 1875 캔버스에 유채
기탁
존 에버렛 밀레이 《오리새끼들》 1889 캔버스에 유채
국립서양미술관 미즈시마 토쿠조씨 기증(구마츠카타 컬렉션)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가브리엘 코트의 초상》
1890 캔버스에 유채
기탁
라파엘 콜랭 《시》 1899 캔버스에 유채
국립서양미술관
장 자크 에네 《노에츨랑부인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국립서양미술관 마츠카타 컬렉션